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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룸버그가 한국의 대학 졸업생들의 곤경에 대한 긴 기사를 썼다.
한국의 고등학생 네 명 중 거의 세 명은 – 재벌이라고도 알려진 – 주요 산업 그룹의 최고 연봉 직업을 얻기 위해 대학에 진학한다. 이에 따라 한국은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대학 졸업생들로 넘쳐나고 있다. 한국에서 최대 규모의 상위 서른 개 회사는 지난 해 대학 졸업생 중 260,000명을 고용했는데, 이로 인해 채용되지 못한 60,000명이 지난 8월 청년 실업률을 6.4%로 – 전국 평균의 두 배가 넘는 수치 – 증가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올해 초 박세훈 박사는 한국의 교육 시스템이 왜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결과를 내는가에 대해 글을 썼다. 위 기사는 그 글을 잘 보완해준다.
본질적으로, 수년에 걸친 사교육은 한국 학생들을 대학 교육을 습득하는 데 대비시키는 게 아니라, 대학 입학 시험에 맞춰 준비시킬 뿐이다. 그 말인즉슨, 한국인들이 국제적인 시험에서 매우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 이유가 이러한 시험들에 합격하기 위해 가르침을 받으며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투자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대학에서 진짜 학계에 들어갈 때, 그들은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능력들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이 두 이야기는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대학 교육이 단순 암기나 훌륭한 시험 성적을 거두는 것에 관한 것이라면, 전혀 가치가 없다. 대신에, 대학 교육은 반드시 생각의 실험실로 간주되어야 한다. 누구나 독립적으로,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견해내고, 자아에 대해 알아가고, 급변하는 세상에 필요한 다양한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는 곳으로.
미국의 교육에 대한 요즘의 토론에서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우리가 지난 몇 십 년 동안 꽤 잘해왔다는 사실을 다들 잊는 듯하다는 것이다. 우리의 시스템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물론, 모두가 잘하지는 않았지만, 미국의 경제는 여전히 세계에서 선망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어떻게 우리는 미국의 경제를 일반적으로 부진한 성적을 내고 있다고 여겨지는 미국 학교들과 조화시킬 수 있을까?
내가 생각하기에 핵심은, 미국 학교들, 특히 대학이, 많은 것을 올바르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교육 실적은 놀랍게도 인간의 마음의 발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인들 중 하나가 아니다. 이단적으로 들릴 지도 모르지만, 아마도 훨씬 더 중요할 활동들을 생각해 보라. 독립적인 연구를 하는 것, 과외 활동에서 지도자의 지위를 맡는 것, 교실 안에서 얻을 수 있는 만큼 교실 밖에서도 얻을 수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들에 대해 배우는 것.
한국은 막대한 수의 대학 졸업생들을 보유하고 있으나, 기업들은 그들을 원하지 않는다. 부분적인 이유는 노동 시장의 실제 구조 때문이다. 대기업들은 채용되는 졸업생들의 수를 정말로 하락시킨다. 그러나 나는 또한 올바른 기술들이 교육 시스템 안에서 길러지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단순히 아이들에게 대학을 가지 말라고 말하는 게 핵심적인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내가 한국에 머무르면서 얻은 가장 중요한 교훈 중 하나는, 경쟁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것이다. 특히 경쟁하는 목적의 변동이 너무 크거나 토너먼트가 제로섬일 경우에 그렇다. 어느 누구도 그렇게 압박으로 가득 찬 환경에서 살거나 일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게다가 그런 환경에서는 모두가 직업이나 교육에 접근할 때 있어 더욱 더 보수적이고 안전해지려고 한다. 스타트업과 마찬가지로, 업무 성과를 지나치게 엄밀히 감시하는 것은 성장을 멈출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더 나은 결과물을 얻어내는 것보다 그들이 목표를 놓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을 더 두려워하게 되기 때문이다.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싶다. 모두를 교육시키는 것은 좋지만, 우리는 모든 교육을 특정한 경제적 성과로 연결하는 것에 있어서 신중해야 한다. 교육은 목적이 아니라, 발전의 수단이며, 균형이 맞아야 한다. 만약 그게 제대로 이루어지면, 직업들은 자연스럽게 뒤따를 것이다.